일본에 진출한 어린 선수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국내와 비교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떠난 선수들이다. 해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뛰고 싶은 리그를 스스로 선택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대개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거나 지역에서는 이름을 알린 적이 있는 유망주일 확률이 높다. 반대로 국내에는 불러주는 팀이 거의 없어 기회를 찾아 일본으로 떠나는 무명의 어린 선수들이 있다. 보통 2~3개 팀을 돌면서 테스트를 거친 다음 힘겹게 프로팀에 들어간다.

[A-피플]에서 만난 일본 J2리그 에히메FC 주전 골키퍼 박성수(21)는 후자에 속한다. 지난 2014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일본으로 테스트를 받으러 떠났다. 그리고 어느덧 3년이 흘렀다. 박성수는 살아 남았다. 2017시즌 팀이 치른 42경기 가운데 41경기에 선발로 나왔다. 1부 리그 승격에는 실패했으나 1~2부 리그 40개 팀을 통틀어 최연소 주전 골키퍼(1996년생 5월생)로 맹활약했다.
박성수는 어린 시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학교 소속이 아닌 클럽 소속으로 축구를 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대회에 나가도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명문 고등학교 축구부에 비해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적었다는 의미다. 중학교 1학년때 정식 축구부가 되었기에 남들보다 경력도 짧았다. 이랬던 박성수는 어떻게 일본 리그 '최연소 주전 골키퍼'가 됐을까.

■ 취미에서 선수로,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박성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용인 지역의 한 클럽팀에 가입하며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축구를 취미로 시작한 처음부터 키가 크다는 이유로 대회에 나가면 골키퍼 장갑을 꼈다. 그땐 그게 싫었다. 공도 무서웠다. 그래서 단지 취미 활동 정도였다.
“취미로 축구를 할때 이천 대월중학교와 연습 경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때 대월중 감독님이 저를 좋게 봤나 봐요. 키가 크다고 골키퍼를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축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 고민을 했어요. 이때 친형이 가장 적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동생 축구 시켜보자고. 그리고 집안형편으로 운동선수의 꿈을 접었던 어머니께는 ‘배구를 하고 싶었는데 못하셨잖아요. 성수는 꼭 축구 시켜요’라며 설득했죠. 결국 형 덕분에 축구에 입문했어요.”
박성수는 대월중을 거쳐 클럽 팀인 하남FC에 입단했다. 일반 고등학교 축구부에 입학할 예정이었으나 감독이 교체되면서 클럽 팀으로 진로가 바뀌었다. 하남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오후 4시 30분까지 수업을 받은 다음 클럽 팀 버스를 타고 운동장으로 향하는 생활을 3년간 반복했다. 운동에 전념하는 일반 고교 팀과 환경이 조금 달랐다. 상대적으로 대학 스카우트에 눈에 띌 기회도 적었다.
명문대에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려왔으나 학교 소속 선수들과 경쟁하기에는 팀 성적이 받쳐주지 못했다. 물론 기회가 아예 없던 건아니었다. 창단된 지 3년이 채 안된 한 신생 대학 축구부가 장학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 무대에 가더라도 프로까지 진출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죄송하지만 신생 대학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 드렸어요. 어떻게든 프로에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불가능했죠. 이름이 잘 알려지지도 않아서….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테스트를 떠나기로 했어요. 일단 일본에 다녀온 다음에 결과를 보고 진로를 생각해보려고 했죠.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죠.”

■ J2 입단, 십자인대 부상, 팀내 5번째 GK박성수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4년 여름, J2리그 에히메와 V바렌나가사키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각각 1주일씩 훈련에 참가했다. 당시 나이 만 17세였다. 급하게 간단한 일본어를 배웠다. 배웠다기보다는 외웠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코칭스태프에 어필하기 위해 어설픈 일본어를 써가며 훈련에 참가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두 팀 모두 어린 나이와 큰 키에 높은 평가를 내렸다. 결국 선수가 팀을 선택했다. 나가사키의 조건이 조금 더 좋았으나 결국 에히메를 선택했다. 에히메가 유망주 골키퍼에 대해 더 좋은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팀에서는 고졸 유망주에 불과했다. 당시엔 일본 선수들보다 키가 조금 컸을 뿐이었다. 피지컬을 강조하는 코칭스태프로부터 자주 질책을 받았다. 키는 192cm로 다른 선수들보다는 우위에 있었으나, 마른 몸이 문제였다.
“저를 처음에 뽑았던 골키퍼 코치님이 나가셔서 1년차 땐 기회가 없었어요. 새로운 골키퍼 코치님이 단단한 골키퍼를 선호해 줄곧 밀려 있었죠. 팀에서는 4번째 골키퍼였어요. 그땐 고등학생이나 다름없는 몸 상태여서 기회를 받지 못한 것 같아요. 하체와 상체 모두 단단하지 못했거든요. 운이 좋아서 첫 시즌(2015년) 중반에 처음으로 벤치에 앉았어요. 골키퍼 2명이 동시에 부상을 당한 덕분이었죠. 그래도 첫 시즌 치고는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엔 4번째 골키퍼여도 즐거웠다. 프로 팀의 일원으로 뛰면서 미래를 보고 나아간다는 자체가 스스로도 대견했다. 2015시즌이 끝난 이후 팀 내부에서는 ‘이제 박성수를 백업(2번째) 골키퍼로 써도 되겠다’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박성수도 의욕이 넘쳤다. 에히메 측은 2015시즌 종료 이후 휴가를 떠나는 박성수에게 ‘내년에 좋은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몸 관리 잘하고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박성수는 국내로 돌아온 다음 딱 3일 쉬고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재활센터와 운동장을 오가면서 남들보다 빠르게 2016시즌을 준비했다. 그게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과욕이었다. 공중에서 공을 잡고 떨어지는 훈련을 하다가 무릎이 뒤틀렸다. 전방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계약서에 ‘오프시즌에 6개월짜리 이상의 부상을 당하면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부상 직후 구단에 사실을 알렸다. 내부 회의를 한 다음에 알려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옥과 같았다. 에이전트도 구단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에이전트사인 CY스포츠의 장두영 팀장은 “당시에는구단에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는 방법뿐이었다. 구단은 성수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구단이 박성수라는 선수에게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에히메는 부상 회복까지 기다리겠다는 통보를 했다. 1년간 키운 유망주를 이대로 내보내기에는 아쉬움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박성수는 자체적으로 자숙 기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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